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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연혁

아이맥스의 시작은 캐나다의 실험적 영화제작자들이 몬트리올의 EXPO '67에 멀티 스크린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만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멀티 스크린 영화제작은 첫 대형 스크린 영화를 만들기 위한 경쟁의 일부였습니다. 영화제작자들은 아홉 개의 프로젝터를 한데 모아서 이를 동시녹음하려 했습니다. 기술적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해내고자 했을 때 훗날 아이맥스라고 불리는 회사를 만들어낸 이 야심찬 팀은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더 나은 방식은 없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답은 더 나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방식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후 3년 뒤에 아이맥스 기술이 탄생했고, 에픽 카메라, 프로젝터 및 돔 스크린 시스템이 일본 오사카 에서 열린 후지 파빌리온 엑스포 '70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이게 됩니다.

아이맥스가 대중에 첫 선을 보였을 때는 몇 개의 틈새 시장만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박물관, 사이언스 센터 및 일부 상징적 상업 장소에 특별히 만들어진 영화관이 설계되고 세워졌습니다. 첫 번째 영구적인 아이맥스 프로젝션 시스템은 1971년 토론토에 있는 온타리오 플레이스 의 시네스피어에 설치되었는데 이곳은 아직도 운영되고 있으며 도시의 역사에 대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다른 상영관에서는 자연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영화인 그랜드 캐년 탐험, 해저탐사 또는 우주여행 등의 주제의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이에 안주하지 않고 아이맥스는 곧 아이맥스 돔 그리고 아이맥스 3D와 같은 신기술을 만들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아이맥스는 1994년 상장되었고 이즈음 할리우드 콘텐츠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맥스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웅장한 모습을 선보였다면 라이브 액션 영화에서 못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조심스레 이에 착수한 아이맥스는 북미 지역에 뉴욕시의 링컨 스퀘어를 시작으로 몇 개의 상영관을 열기 시작했는데, 이 야심찬 신사업모델은 곧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아이맥스 창립자인 그램 퍼거슨과 로만 크로이터는 대부분의 영화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상영하도록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들과 소수의 다른 아이맥스 제작자들은 모든 멀티플렉스를 채울 만큼의 아이맥스 영화를 제작할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할리우드에서는 더 많은 상영관이 확보되기 전에는 아이맥스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이맥스는 전형적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이맥스는 실험실로 돌아가서 DMR 또는 디지털 리매스터링이라는 혁신적인 신기술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 기술 과정을 통해 이미 강력한 할리우드 영화는 숨막힐 듯 멋진 아이맥스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아이맥스는 감독들과 함께 여러 각도에서 영화 향상 작업을 하며 채도, 콘트라스트, 밝기 등 모든 부분을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스튜디오에서는 자신의 영화를 한층 업그레이드된 아이맥스 영화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기술을 이용한 첫 번째 상업영화는 아폴로 13이었고 이 영화는 첫 상영 이후로 수 개월동안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할리우드와 아이맥스의 로맨스는 한층 물이 오르게 됩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가 알다시피 역사가 된거죠. 오늘날 아이맥스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맥스의 새로운 디지털 프로젝션과 사운드 시스템은 점차 커져가는 블록버스터 영화 시장과 함께 아이맥스 네트워크를 북미, 서유럽 및 일본과 같은 기존 시장은 물론 중국 및 러시아와 같은 신흥시장으로까지 뻗어나가게 합니다. 아이맥스사는 이제 크리스토퍼 놀란, 제임스 카메룬, 팀 버튼 그리고 마이클 베이와 같은 거장들과 아바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및 트랜스포머: 다크 오브 더 문과 같은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